어의충근정량호(御醫忠勤貞亮扈) 성공신종록대부(聖功臣崇祿大夫) 양평군(陽平君) 신 허준(臣許浚) 하교(下敎) 받들어 지음
신이 생각건대 인체 구성은 안으로 5장
6부(五臟六腑), 밖으로 근골(筋骨), 기육(肌肉),
혈맥(血脈), 피부(皮膚)가 있어 그 형태를
이루고, 정(精), 기(氣), 신(神) 또한 장부(臟腑)와
백체(百體)의 주(主)가 되는 것이므로 도가(道家)의
‘삼요(三要)’와 석씨(釋氏, 佛家)의 ‘사대(四大)’가
이것을 말함이다. 도학(道學)의 서(書)
『황정경(黃庭經)』에도 내경에 관한 글(文) 이
있고, 의서에도
『내외경상지도內外境象之圖)』가 있으니
도가는 청정(淸靜)과 수양(修養)으로써 삶의
근본을 삼고, 의가는 약이나 침뜸으로써 치료의
법칙을 삼았으니, 도가는 자상하게
심신 전체를 다룬 셈이요, 의가는 거칠게
구체적인 부분만을 다루는 셈이다. 이제 이
책에서도 먼저 내경의 정, 기, 신과, 장부를
「내경편」으로 하고, 다음에 외경의 두(頭),
면(面), 수(手), 족(足), 근(筋), 맥(脈), 골(骨), 육(肉)을
「외형편」으로 하였다. 또 오운(五運),
육기(六氣), 사상(四象), 삼법(三法), 내상(內傷),
외감(外感) 등 모든 병례(病例)를 따서
「잡병편」으로 하고 끝으로 탕액, 침뜸을
마지막편으로 함으로써 두루 병인(病人)에
쓰게 하였다. 이 책을 보면 허실(虛實), 경중(輕重),
길흉(吉凶), 사생(死生)의 징조가 물에 물체를
비쳐 보이듯이 환하다. 헛 치료로 요절하는
환회(患悔) 없기를 바란다.
옛사람들 처방(藥方)은 들어가는
약재의 중량(重量)이 너무 많아서 아주 곤란하다.
비용(備用) 국방(局方) 일제(一劑)의 수(數)가
더욱 많으니 가난(貧寒)한 집에서 어찌 이런
것을 갖출 수 있으리오. 『득효방得效方)』과
『의학정전(醫學正傳)』에는 모두 5전(五錢)으로
하였는데, 그것은 매우 경솔하고 터무니없는
일이다. 대개 한 처방에 그저 4, 5종이면 5전도
가능하지만, 2, 30종이나 되는 약제라면 1재(一材)가
겨우 1,2분중(分重) 밖에 못 들어가므로 함량(性味)이
적어서 어찌 소기(所期)의 효과를 바랄 수 있으리오.
이 근자에 나온 『고금의감(古今醫鑑)』과
『만병회춘(萬病回春)』에는 약 1첩의 분량을 7,8전
혹은 1냥까지로 하였는데, 이것은 약미(藥味)가
완전하고 다과(多寡)가 알맞아서 요즘 사람(今世人)의
기품(氣稟)에 합치되므로 이 책은 모두 이 표준에
따라 1첩으로 만들어 제용(劑用)에 편리하게
쓰도록 하였다.
옛사람이 “의술을 배우려면 먼저
본초학(本草學)을 읽어서 약성(藥性)을 알라”고
하였으나 본초(本草)는 활번(活繁)하고, 제가(諸家)의
의론이 일치하지 않고, 지금 사람이 알지
못할 약재가 그 반이나 된다. 바로 행용(行用)하는
것을 뽑는 데는 신농본경(神農本經, 본초) 및
일화자주(日華子註, 송조(宋朝)간행의
일화자본초(日華子本草))와 동원(東垣, 원조(元朝)
이고(李고)) 단계(丹溪, 원조(元朝) 주진형(朱震亨))의
요어(要語)와 또 당약(唐藥)과 향약(鄕藥)에 적혀
있는 것을 고용(考用)하는데, 향약(鄕藥)은
향명(鄕名)과 더불어 산지(産地) 및 채취하는
시월(時月), 음양 건정(乾正)하는 법이 씌어져
있으므로 이용하기가 쉽고, 멀리서 구해
온다든지 얻기 어렵다든지 하는 폐단이 없다.
왕절제(王節齊)가 “동원 이고는
북방의자(北方醫者)인데 나겸보(羅謙甫)가 그
법을 전함으로써 강절(江浙)지방에 알려졌고,
단계 주진형(朱震亨)은 남의(南醫)인데 유종후(劉宗厚)가
그를 배움으로써 섬서(陝西)지방에서 이름났다”고
한 바, 의(醫)에는 남북으로 부르는 이름이
있다.
우리나라는 구석진 동방에 있고, 의약의 연구가 줄기차게 계속되고 있는 바, 우리나라의 의는 ‘동의(東醫)’라고 일러야 옳을 것이며, 또 감(鑑)이라 함은 ‘만물을 환히 비쳐서 그 형태를 놓치지 않는다’는 뜻이니, 원조(元朝) 나겸보(羅謙甫) 저서에 『위생보감(衛生寶鑑)』이 있고, 명조(明朝) 공신( 信) 저서에 『고금의감(古今醫鑑)』이 있는데, 다 감(鑑)으로써 이름한 뜻이 여기에 있다. 이제 이 책을 펼쳐 보면 길흉(吉凶) 경중(輕重)의 환함이 거울과 같으므로 드디어 『동의보감』이라고 이름을 부쳤는데, 이것은 옛사람들의 뜻을 본받은 것이라고도 하겠다.